아둘람 굴은 다윗이 사울의 질투의 칼날을 피하여 온 동굴의 이름입니다
<삼상22:1-3>. 다윗이 아둘람 굴에 이르렀을 때 세상에서 환난당한 모든 자와 빚진 자와 마음이 원통한 자가 다 모여 들었습니다. 그리고 다윗은 그들 가운데 장관이 되었습니다. 즉 그들은 다윗의 통치를 받았습니다.
당시의 세상에서 이 환난당한 자들, 빚진 자들, 그리고 마음이 원통한 자들이 아둘람굴에 찾아 왔을 때, 그들은 다윗의 모습을 보았습니다. 자기들이 겪는 아픔과 고통 그리고 서러움과는 비교할 수 없이 원통하고 억울하고 분노를 느끼기에 충분한 다윗의 삶을 보았습니다.
더욱이 자기들은 혹 자신들의 죄로 말미암아 환난을 당하고 있었음에도 불구하고 사울 왕에게 아무런 죄도 없는데 생명의 위협을 받아 환난을 겪는 다윗의 모습을 보았습니다. 한걸음 더 나아가 충분히 복수의 칼을 들어도 될텐데 오히려 자신을 죽이러 쫓아 오는 사울을 왕으로 예우(禮遇)하고 또 자신의 원통한 삶에도 불구하고 오히려 마음을 다하여 다른 사람들을 사랑하는 다윗을 보았습니다. 그 다윗의 모습을 인하여 세상에서 실패한 사람들, 그들은 자신들의 연약함과 죄됨을 깨닫고 이제는 다윗의 부하가 되었습니다. 다윗의 통치를 받으며 다윗을 따르게 되었습니다.


오늘의 교회는 이 아둘람굴과 같은 곳입니다. 아니 오늘의 바람직한 교회상은 바로 이 아둘람굴과 같은 모습이라고 생각합니다. "생활이 그대를 속일지라도 슬퍼하거나 노하지 말라..." 라고 러시아 시인 푸시긴이 노래했듯이 오늘날에도 수많은 사람들이 단지 세상에 살고 있다는 그 사실 하나로 인하여 마음에 이런저런 상처를 안고 살아갑니다.
이런 세상의 현실, 경쟁(競爭)과 선취(先取)라는 세상의 매서운 바람에 시달린 영혼들이 마음의 상처를 부여안고 찾아올 수 있는 곳이 교회이어야 합니다. 자신의 삶의 아픔을 혼자서는 주체할 수 없고 또 의지할 데 없는 사람들에게 피난처(避難處)와 같은 곳이 바로 교회입니다.
또한 아둘람굴의 모습처럼 교회는 이렇게 아픔을 안고 찾아온 영혼들에게 교회의 여러 모습을 통해서 예수님을 보여 주는 곳입니다. 뭇사람들이 세상에서 당하는 환난과 억울함과는 도무지 비교할 수 없는 형극(荊棘)의 길을 가신 예수님, 더욱이 범인(凡人)들과는 달리 아무런 죄과도 없는데 단지 '사랑'이라는 한가지 이유 때문에 모진 십자가의 길을 가신 예수님의 모습이 환하게 보여져야 합니다. 우리들의 삶의 아픔을 이야기하는 것이 부끄러울 정도로 예수님의 사랑과 고난의 발자취가 각인의 마음에 햇살처럼 비춰지는 곳이 교회입니다.
그 예수님의 모습 앞에서 각인이 자신의 죄를 자복하고 비로소 예수님의 통치를 받으며 예수님의 삶을 본받는 곳이 교회입니다.
우리의 교회가 이런 교회, 우리 시대의 아둘람굴과 같은 교회 공동체가 되도록 기도합시다. 우리 교회를 통해서 사람들이 그리스도의 모습을 바라보고 흠모할 수 있도록 소망을 안고 기도합시다.

 
 


 

저희 교회는 '가서 모든 족속으로 제자를 삼으라' 는 예수 그리스도의 지상명령에 순종하여 복음 전도와 성서적인 훈육 그리고 세계 선교를 그 목적으로 존재합니다.

저희 교회는, 예수 그리스도의 지상명령을 잘 성취하기 위한 우리 시대의 필요가 빛과 소금으로서의 역할을 잘 감당하는 성숙한 그리스도인임을 보고 그 시대의 사명을 이루어 우리 주님의 마음을 시원케 해 드리고자, 그 정신과 소망을 담아 '빛과 소금의 교회'라고 이름을 정했습니다.

저희 교회는, 우리 시대의 부흥, 성화의 혁명을 기도하며 진정한 변혁과 선교를 실현케 하는 뜀틀, 발판으로서의 교회 공동체가 되고자 하여 다음의 모습을 소망하고 지향합니다.


  정직하고 순결한 교회에 하나님의 귄능이 임함을 믿고
순결과 정직의 얼(spirit)이 언제나 교통하는 교회
 
  진정한 교회는 하나님 앞에서 올바른 교회임을 믿고
언제나 정도(正道)를 행하여 진정한 영적 기쁨이 있는 교회
 
  주는 것이 받는 것보다 더 복이 있다는 우리 주님의 말씀에 따라
열심히 베풀어 주는 교회
 
  오늘 훌륭한 영적 지도자를 발굴, 육성하는 것이
내일의 복음화의 열쇠임을 믿고
젊은이 사역을 통해 훌륭한 크리스천 지도자를 세우기를 힘쓰는 교회
 
  이기는 자에게 약속하신 주님의 약속을 믿고
삶의 현장마다 신앙의 승리를 도전하며 땅 끝까지 복음을 전하는 교회
 



     

  성도들이 교회의 조직이나 행사에 참여하는 형태가 우선이 아니라 교회가 개개 성도들의 믿음의 삶을 적극적으로 돕는 것을 우선합니다. 따라서 특별한 행사 위주보다 개개 성도들의 정상적인 삶이 빛으로 소금으로 성숙하는데 우선 순위를 둡니다.
 
  오늘날처럼 교회에 대한 부정적인 인식이 팽배해진 시대에서 최선의 전도는 바람직한 교회, 성서적인 교회의 모습을 보여주는 것이라 믿고 세상의 흐름과는 분명히 다른 대조 사회(Counter Society)로서의 교회의 모습을 지향합니다.  
  교회 안에서조차 '대중속의 고독'을 느낀다면 그것은 분명히 불행입니다.
저희 교회는 다수 가운데 파묻혀 소외된 사람들이 없는,
진정한 영적 가족(Spiritual Family)으로서의 교회의 모습을 지향합니다.
 
  많은 프로그램을 운영하기보다는 교회의 3대 기능인 예배와 교육 그리고 교제의 실질적이고도 질적인 성숙을 중시합니다. 예배를 통해서 하나님의 영광의 임재를 사모하며 성경공부를 통해서 이 세상에서 하나님의 자녀로 살아가는 삶의 지혜와 길을 명확히 깨달음 받고 교제를 통해서 성령님께서 실재적으로 교통하셔서 위로해 주시고 사랑을 느끼게 하는 모습을 지향합니다.  
  얼마나 많은 선교사를 배출하느냐도 중요하지만 어떤 모습의 선교사를 배출하느냐가 훨씬 더 중요합니다. 어떤 모습의 선교사냐를 결정하는 가장 중요한 관건은 어떤 교회에서 신앙을 배웠느냐라는 사실은 재론할 여지가 없습니다. 한국교회의 과제가 마지막 세대 마지막 주자로서 세계선교를 감당하는 것임을 믿고 세계선교의 발판이 될 수 있는 좋은 교회의 모습을 지향합니다.
세계선교를 저희가 얼마만큼 감당할지는 저희는 모릅니다. 그러나 세계선교를 혼자 다 하겠다는 허황된 야망에 사로잡히지 않으며 그렇다고 적당한 선에서 만족해 버리는 안일함도 미워합니다. 욕심이나 야망이 아닌 주님의 지상명령을 따르는 그 순종으로서 세계선교에 주어진 역할을 최선을 다하여 감당하고자 합니다.